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민중가요의 첫 가사가 ‘사랑’이란 걸 알고 계시나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1982)의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는 5·18의 투사이자 희생자였던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사·작곡된 곡이라고 합니다. 노래는 목숨을 건 투쟁을 위해서라면 ‘사랑’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는 망자의 못다 한 사랑을 이어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 속 삶이 곧 투쟁이 되어버린 이에게 사랑은 죽음 이후에야 가능한 것일까요? [악보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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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민중가요?] 두 번째 글의 키워드는 ‘사랑’입니다.💗 내일은 전 세계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6월의 첫날입니다.🌈 사랑이 곧 투쟁이 되어온 이들이 거리로 나오는 날이지요. 이를 기념하며 사랑과 정치적 삶, 투쟁을 다룬 노래 4곡을 준비했습니다. 치열한 일상과 사회 변혁의 결의 사이에서 사랑의 위치란 어디일지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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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겸 가수 ‘한돌’이 작사·작곡한 노래 〈외사랑〉을 첫 번째 곡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노래는 밤하늘의 작은 별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는 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가사엔 “공장의 하얀 불빛은 오늘도 그렇게 쓸쓸했지요”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공장의 불빛을 언급하는 이 화자는 공장의 노동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가 사랑하는 이가 공장에 있을 수도 있겠죠.🏭
이 곡은 1984년, 신형원 1집 음반의 수록곡으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당시엔 검열로 인해 가사 중 ‘공장의’가 ‘내 마음’이란 말로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이후 1992년에야 김광석이 본래 가사의 〈외사랑〉을 그의 3집 앨범에 수록하면서 노래는 제 의미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 공장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랑의 좌절을 말하는 이 노래에서 사랑은 ‘사치’처럼 표현됩니다. 장시간 노동을 하며 먹고 살기에 급급한 이에게 사랑은 금세 단념하고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이죠. 막막한 현실의 조건에서 “이룰 수 없는 내 사랑”을 토로하는 이의 심정은 참으로 슬프게 다가옵니다. 김광석의 목소리로 노래를 들으며 그 마음에 닿아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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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roye Sivan - 〈Heaven〉(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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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곡은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의 〈Heaven〉입니다. 물론 이 곡은 ‘민중가요’라 말하긴 어려운 대중음악입니다. 다만 가수와 뮤직비디오의 사연, 그 정치적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선곡하였습니다. 트로이 시반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1995년생의 호주 출신 팝 가수입니다. 그는 데뷔 전부터 공개적으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혔으며 다양한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성소수자의 사랑과 문화를 표현해 왔습니다. 〈Heaven〉은 2016년에 처음 공개된 곡으로 트로이 시반이 커밍아웃을 하며 품었던 고민과 다짐을 담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7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전날에 맞춰 〈Heaven〉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습니다. [참고]
뮤직비디오에는 흑백 영상으로 기록된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가 등장합니다. 그와 함께 노래는 “나의 일부를 잃어야 한다면 난 천국을 원하지 않아So if I'm losing a piece of me, maybe I don't want heaven”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자신 그 자체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조건 속에서 사랑의 인정이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눈물과 좌절, 큰 용기와 연대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한 사랑도 있습니다. 〈Heaven〉 뮤직비디오의 성소수자는 깃발과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합니다.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며 함께 춤을 춥니다.🕺 이와 같은 현재진행형 역사와 함께 우리는 이 현실 속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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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ercedes Sosa - 〈Todo Cambia〉(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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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곡으로 아르헨티나 민중음악의 대모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곡을 골라 보았습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19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문화운동인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ón’을 대표하는 가수입니다. 당대 칠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각지에선 경제·문화의 식민화와 독재 정권에 저항해 라틴아메리카인 정체성과 사회 변혁을 노래하는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운동, 누에바 칸시온의 선도자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는 형언하기 어려운 울림을 지니고 있습니다. 1984년에 발표된 곡 〈Todo Cambia〉을 통해 그 힘을 느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참고]
노래 제목을 직역하면 “모든 건 변한다”입니다. 계절, 생각의 방식, 맹수의 털. 여행자의 길, 식물의 색깔 등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노래는 한 가지 변치 않는 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바로 내 마을pueblo, 내 사람들gente을 향한 내 사랑amor입니다.💜 가수는 호소력 깊은 목소리로 굳건한 사랑의 의지를 노래합니다. 그 사랑은 당대의 삭막한 아르헨티나 사회에 어떤 울림을 주었을까요? 우리 또한 저마다의 위치에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와 공명하며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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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은 ‘황현’이 부른 〈참사랑〉입니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1980년대부터 〈파업가〉, 〈단결투쟁가〉를 비롯해 수백 개의 민중가요를 작사·작곡해 온 김호철입니다. 김호철은 노동자가 직접 공감하며 부를만한 민중가요를 만들어 온 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 그의 곡 대부분은 행진에 어울리는 힘찬 박자와 음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참사랑〉만은 김호철의 다른 곡과 달리 서정적 멜로디와 가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래는 “투쟁 속에서 만난” 연인 혹은 동지 간의 사랑을 전합니다. 그야말로 김호철식 사랑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야윈 얼굴 서로 보듬고 우리 새 세상 만들 때까지 우리 변치 말고 투쟁하자”라는 노래 가사는 민중음악가 김호철에게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보입니다. 눈보라 치듯 혹독한 현실 앞에서 사랑은 그보다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맞이하고픈 마음, 어깨를 기대며 그 시간을 버텨내는 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이 노래에선 사랑과 투쟁은 서로 반대의 말이 아닌 것이지요.✊ 여러분께서도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기대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참사랑〉은 다양한 버전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중 3년 전 작고한 민중가수이자 김호철의 아내, 황현이 부른 노래로 준비했습니다.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투쟁해 온 님, 사랑과 함께 한 주 잘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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