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건 사고가 많은 요즈음입니다. 물론 아무런 비극이 없는 때가 있었나 싶지만, 최근 몇 주간 뉴스를 보며 더욱 착잡한 기분이 듭니다. 지난 6월 24일, 경기 화성시의 리튬 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사망했습니다. 신원확인 결과, 사망자의 국적은 중국 17명, 한국 5명, 라오스 1명으로 밝혀졌습니다. [출처] 참사 이후 희생자 유가족과 지역 노조, 시민사회에선 산재의 진상 규명과 유족 배상, 그리고 이주노동자를 위한 안전대책 마련을 사측 및 정부 기관에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건 열흘 뒤인 7월 4일엔 화성시청에 희생자 영정과 위패가 안치된 분향소가 조성되었습니다. [출처]
[이것도 민중가요?] 이번 호에선 ‘이주와 애도’라는 주제로 4곡의 노래와 함께, 화성 아리셀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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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탑크랙다운 - 〈우리는 이주노동자〉(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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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라는 말을 곱씹다 보면 생경한 느낌이 듭니다. 애당초 이주는 많은 경우 노동의 조건 그 자체임에도, '이주노동자'는 매우 특정한 사람들만을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바로 앞에 원하는 일자리가 있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노동하고 생활하기 위해 어디론가 거처를 옮기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이주노동자'란 말은 이들 모두를 포괄하지 않습니다. 일하기 위해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던 사람들, 이동 중 국경이나 인종, 문화의 벽을 넘어온 이들만을 가리킬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자 일련의 이주자입니다. 2010년 발매된 다국적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 down'의 곡 〈우리는 이주노동자〉는 경쾌한 리듬과 함께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린 이주노동자랍니다. 꿈을 위해 희망을 찾는 우린 만국의 노동자랍니다." 스탑크랙다운은 2003년 정부의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및 추방 조치에 맞서며 결성된 밴드입니다. 팀 이름 '스탑크랙다운(탄압을 중단하라)'는 농성장에서 외치던 구호였습니다. 네팔, 미얀마, 인도네시아 출신의 이주노동자 5명으로 구성된 밴드는 약 10년간 정부의 표적 단속 등 많은 역경을 겪는 와중에도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공연하며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스탑크랙다운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
앞서 소개한 〈우리는 이주노동자〉는 스탑크랙다운의 두 번째 앨범 수록곡입니다. "우린 이주노동자랍니다"라는 가사 속 '우리'는 밴드 멤버들을 가리키는 말일 테지만, 노래를 반복해 듣고 있노라면 그 '우리'가 마치 청자인 저를 포함해 모든 이를 포괄하는 말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자 일련의 이주자이기에,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 연결과 공감의 가능성 속에서 함께하는 애도, 애도의 연대를 제안해 봅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에서 스탑크랙다운은 "멋진 세상 만들어" 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노래합니다. 동시에 이 낙관을 외치기까지 밴드 멤버들은 산재와 자살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동료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지켜봐 왔습니다. 노래 속 외침은 이들을 애도하고 그에 책임을 다하며 살겠다는 다짐과 같습니다. 그에 공명하며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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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화성 아리셀 참사로 사망한 23명 가운데 중국 국적자는 17명입니다. 한국 국적 사망자 중 1명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8명이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였던 것인데요. 이들 중 대다수가 연변 출신의 중국동포, 즉 ‘조선족’ 여성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는 약 65만 명의 중국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방문취업비자나 재외동포비자를 소지한 이들은 주로 인력사무소를 통해 파견 근무 방식으로 일합니다. 한국에서의 일자리는 고향보다 더 많은 임금을 보장하지만, 그럼에도 노동 환경의 안정성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노동자의 경우, 강도 높은 업무와 안전 교육 미비, 그리고 불법파견 문제를 지속적으로 겪고 습니다. 이번 화성 아리셀 참사 또한 이와 같은 배경 가운데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출처]
많은 중국동포의 고향인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선 일을 하러 고향을 떠나는 행위가 대수롭지 않은 선택지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연변의 대중가요 중 "아내, 남편, 삼촌 모두 일하러 외국으로 갔다"고 노래하는 〈모두 다 갔다〉[노래듣기]라는 곡이 인기를 끌 정도입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유행한 '코리안 드림' 또는 '한국바람'이라는 현상 속에서 오늘날까지 수십만 명의 중국동포가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하지만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났으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면 이들,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그런 면에서 이번 화성 아리셀 참사가 더욱 큰 비극으로 느껴집니다, 고인의 좌절된 희망과 가능성을 떠올리면 슬픔이 가득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왔으나 산재로 삶을 마감한 고인을 애도하며 연변 가요 〈타향의 봄〉을 골라보았습니다. 타향살이의 애환을 이야기하는 이 곡은 1990년대 이래로 가장 인기를 끈 연변 가요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 선곡이 고인과 유족에게 닿기란 어렵겠지요. 다만 노래와 함께 공감의 폭을 넓힐 우리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아리셀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유족의 말을 인용하며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말과 실천이 필요할지 고민해 봅니다. "이러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전 세계 어디에서도요.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선 안 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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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客死)'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집 안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하는 죽음을 '정상적' 죽음으로 여기며 선망했다고 합니다. 반면 갑작스러운 사고사나 조사(早死), 그리고 집이나 고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겪는 객사는 망자의 혼을 이승과 저승 사이로 떠돌게 하는 '비정상적' 죽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출처] 많은 이주노동자는 충분한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 그곳에서 편안히 노후를 보내고 죽음을 맞이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하지만 이주, 집, 가족의 조건이 모두 복잡하고 난감해진 오늘날, 고향에서 삶을 마감하기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음악가 이민휘의 노래 〈미래의 고향〉은 '객사', 즉 이주노동과 죽음의 문제를 다르게 바라볼 단초를 제공합니다. 장애인인권운동 현장을 비롯해 여러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를 만들고 불러온 이민휘는 2023년 정규앨범 《미래의 고향》을 발매했습니다. [출처] 타이틀곡 〈미래의 고향〉에서 가수는 고독하고 다정하게 노래합니다. 고향을 마음에만 품은 채 끝내 되돌아갈 수 없다면, 적어도 그에게 고향은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노래는 고향과 정처를 상실한 우리가 "우릴 우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질문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인(囚人)'과 같은 신세가 된 사람들이 "자꾸만 사라지는 이 세계"입니다. 하지만 노래는 비관에 그치지 않습니다. 고향을 떠나 잃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스칠 때 같은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가수는 다음의 구절을 가사를 반복하며 노래를 마칩니다. "오늘 부르는 노래는 내일 부를 노래."
〈미래의 고향〉은 우리가 같은 노래를 부르며 함께한다면, 내일 혹은 그보다 미래엔 고향과 같이 따스하게 누울 자리를 찾을 것이라 읖조립니다. 어쩌면 애도는 함께 미래의 고향을 만드는 일일지 모릅니다. 전통사회의 지역 공동체 역시 ‘객사’로 원혼이 된 망자를 달래기 위해 굿이나 제사, 천도의례 등 다양한 의례를 반복해 왔다고 합니다. [출처] 얼굴도 모르고 말 한번 나눠본 적 없지만 억울한 죽음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곡(哭)하며 눈물 흘리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향 밖에서 죽어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고인에게, 슬퍼하는 우리가 곧 고향이기에 저승으로 올라가도 가끔 돌아와 환대받을 고향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화성 아리셀 참사와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그와 같아야 합니다. 〈미래의 고향〉은 고향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자꾸만 떠나가도, 우리에겐 같은 노래를 부를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함께 노래 부를 때, 우리는 망자의 고향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하는 우리입니다. 망자를 애도하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한국, 중국, 라오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목숨은 위태로워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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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 7월 9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촬영: 이서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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