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더운 여름 무탈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이것도 민중가요?] 이번 호에선 “읊조리는 목소리”라는 주제로 다양한 음악을 소개드리려 합니다. 통상적으로 민중가요를 이야기하면 집회에서 따라 부르기 좋은 힘 있고 쉬운 구성과 음조의 곡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또는 서정적이거나 애달픈 멜로디와 함께 사회적 문제나 참사를 노래하는 곡도 익숙할 것입니다. 한편, 이 글에선 이러한 노래들과 사뭇 다른, 특정한 멜로디 없이 ‘읊조리듯’ 당대의 사회·정치적 사안을 전하는 곡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진심을 담은 읊조림은 때로는 우렁찬 외침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읊조리는 목소리를 들으려면 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소개할 노래들은 포크, 재즈, 힙합 등의 음악적 장르를 응용해 마치 이야기를 구연하거나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사회·정치적 문제와 그에 대한 변혁의 의지를 전합니다. 노래에 귀 기울이며 함께 민중가요와 정치적 목소리의 다양한 방식, 그리고 읊조림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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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태춘 - 〈사람들 2019〉(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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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곡은 원로 민중가수 정태춘의 〈사람들 2019〉입니다. 정태춘은 1993년 발매한 동명의 노래 〈사람들〉에 다시 가사를 붙여 2019년에 이 곡을 발표했습니다. [원곡 듣기] 두 노래는 공통적으로 정태춘이 바라본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가수 지인의 실명과 실제 통계를 인용하며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1993년 원곡에선 '문승현(작곡가, 노찾사 전 리더)', '백선생(백기완)', '박노해(시인) 등의 사연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노래 중반부, 가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1990년대 초, 한 해 동안 교통사고(13,000여명), 산업재해(2,300여명), 농민(1,200여명) 등이 "죽고 죽고 죽고 지금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곡으로부터 26년이 지나 발매된 〈사람들 2019〉에는 이제 손녀를 유치원에 보내는 일상을 보내는 '할아버지' 정태춘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노래는 가사만 다를 뿐, 원곡과 같은 반주와 구성을 지닙니다. 새로운 가사에서 정태춘은 거리를 가득 메운 사채업자의 명함, 폐지 줍는 노인의 힘겨운 노동, 잊혀가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탄식과 함께 이야기합니다. 또한 노래 중반부, 원곡과 같은 시간대에서 한 해 동안의 여러 통계가 또다시 인용되는데요. 가수는 교통사고(4,185명), 자살(12,463명), 산업재해(1,957명)로 사람들이 죽었고 "1만여 명의 신부들이 중국, 동남아에서 들어"왔다고 읊조립니다. 원곡에서 언급된 1990년대의 통계와 비교했을 때, 〈사람들 2019〉은 자살자와 이주민의 급증이라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체감하게 합니다.
1993년과 2019년에 발매된 정태춘의 〈사람들〉을 듣고 있노라면 사회를 향한 가수의 진심 어린 하소연과 걱정을 앞에서 듣는 것만 같습니다. 정태춘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이 구체적인 이야기 끝엔 더욱 깊은 쓸쓸함과 비탄이 남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강렬한 감정을 비관이 아닌 변혁적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겠죠. 어쩌면 수십 년간 민중가요 다시 부르기를 멈추지 않아 온 정태춘의 삶에서 귀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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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Gil Scott-Heron -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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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1970~80년대 미국에서 흑인 시민권 운동을 비롯한 여러 사회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한 시인이자 운동가, 그리고 가수인 '길 스콧-헤론'의 곡을 준비했습니다.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혁명은 방송되지 않을 것이다)〉는 1971년에 발매된 그의 대표곡입니다. 이 곡은 재즈와 펑크의 요소가 가미된 반주, 그리고 시를 낭송하는 듯한 길 스콧-헤론의 읊조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수는 당대 미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투쟁의 상징적 장면을 나열하며 그 모습이 “슬로우 모션이든 현장 사진이든slow motion or still” 어떤 형태로도 방송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혁명은 방송되는televised 사건이 아니라 텔레비전 밖 세상의 생생한live 일이기에 그 현장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과 가수 길 스콧-헤론은 이후 미국 흑인 음악과 문화계 전반에 큰 귀감이 되었으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한 힙합 장르에도 이어졌습니다. [참고] 소위 ‘의식있는conscious 힙합’, 혹은 ‘정치적 힙합’이라 불리는 하위 장르가 힙합 문화 내에 자리 잡으며 인종 문제나 공권력의 부패, 민중의 단결 등을 다룬 랩 음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후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Fight the Power(권력에 맞서라)〉라는 곡이 크게 흥행한 바 있습니다. [듣기]
읊조리는 목소리를 통해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약자 간의 공감과 연대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에 이르러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라는 미국 내 인종차별 및 경찰의 과잉 진압 반대 운동이 기점이 되어 정치적 힙합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2015년 발매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Alright〉은 이러한 ‘BLM 운동’의 상징적 노래로 여겨집니다. [듣기] 이 노래에서 켄드릭 라마는 인종차별로 나타나는 도시 내 ‘지속되는 전쟁continuous war’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그와 함께 가수는 “우리는 괜찮아 질 거야we gon’ be alright”라는 후렴구를 반복합니다. 미국 내 흑인의 역사와 현재, 그 때문에 분열된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 속에서 ‘괜찮아 질 거야’라는 읊조림은 비관과 낙관을 거듭하며 삶을 이어가는 미국 흑인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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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타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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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장르를 통해 사회·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여러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1990년대 수많은 가출청소년의 귀가를 이끈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듣기] 그 이후로도 한국 힙합 문화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를 가사에 담은 여러 음악이 발매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할 곡은 2020년, 래퍼 ‘치타’가 부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입니다. 이 노래에는 같은 제목의 두 원곡이 있습니다. 하나는 1980년대 후반, 민중가수 안치환이 시인 박영근의 시를 개작해 만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입니다. [듣기] 그리고 다른 하나의 원곡은 2002년, 래퍼 ‘MC스나이퍼’가 안치환의 곡 후렴을 따와 다시 만든 동명의 힙합 음악입니다. [듣기] MC스나이퍼의 첫 번째 정규앨범 《So Sniper...》의 수록곡인 이 노래는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랩 가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KBS에선 특집 방송을 기획했습니다. 당시 이 방송을 통해 래퍼 치타는 MC스나이퍼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편곡해 불렀습니다. MC스나이퍼의 가사를 그대로 살린 해당 무대에서 가수는 19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을 묘사합니다. 가사에는 ‘닭장 같은 공장’에서 열악하게 일하는 미성년 노동자들과 그 현실을 비판하며 분신한 전태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가수는 이와 같은 부모 세대의 저항과 투쟁에 경의를 표하는 한편, 다음 세대로서 자유를 향한 의지를 이어야 할 책임감을 이야기합니다. 노래를 부른 래퍼 치타는 과거 2016년,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곡 〈Yellow Ocean〉을 발매하고 한 방송에서 참사 유가족을 초대해 무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듣기] 이처럼 그는 불합리한 죽음을 애도하고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읊조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는 감정을 더욱 깊이 건드리고, 때로는 격렬한 외침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한 곡들은 단순히 노래를 넘어서, 사회적 부조리와 아픔에 대한 진심 어린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곡들은 각자의 시대와 환경 속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변화를 촉구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읊조림이 가진 힘은 바로 이곳에서 비롯됩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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